[현장에서] 83년 서울시민 건강지킨 백병원, ‘폐원’ 결정 하루 앞둬
[현장에서] 83년 서울시민 건강지킨 백병원, ‘폐원’ 결정 하루 앞둬
  • 안호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6.19 09:30
  • 최종수정 2023.06.1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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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학원 이사회, ‘폐원’ 강행 의지…의사·직원·외부여론은 ‘반대’

[인포스탁데일리=안호현 전문기자] 지난 83년동안 서울 명동 입구에서 서울시민들의 건강을 지킨 백병원이 누적 적자를 이유로 ‘폐원’될 위기에 처해있다. 앞서 서울백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20일 이사회를 열고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의료 관련 사업은 모두 추진 불가능해 폐원이 최선이며 병원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거나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73억원 손실을 본 뒤 2022년에는 한해 적자가 161억원까지 늘었다. 올해도 지난 3~4월 두 달간 23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누적 적자가 1745억원을 넘어서면서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서울 백병원 오는20일 이사회에서 폐원안 논의. 사진=뉴스원
서울 백병원 오는20일 이사회에서 폐원안 논의. 사진=뉴스원

하지만, 적자를 이유로 서울백병원을 폐원하겠다는 인제학원 이사회에 대해 병원과 대학 안팎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인제학원측에서 서울백병원 ‘폐원’ 의지를 밝힌 이후, 교직원들은 병원 폐업과 관련한 수백 통의 민원전화에 시달리고 있으며, 과거 진료기록 차트를 복사해 가는 환자들이 늘고 검진 예약 취소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8일 서울백병원 교수협은 폐원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대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은 병원 적자의 원인은 교직원이 아니라며 폐원 안을 취하하고, 병원의 회생‧발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교직원과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12일 서울백병원 9층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 조영규 교수는 “서울백병원 교수들은 서울 백병원 폐원 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겠다는 TFT 결정을 취하하고, 병원 회생‧발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교직원들과 대화해야한다”고 학교법인 측에 요구했다.

이어 병원이 적자의 원인을 교직원들에게 돌리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 법인의 경영 전략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2006년 근무를 시작한 이후 계속 적자를 기록했고 법인은 줄곧 서울백병원 교직원들에게 책임을 물었고, 끊임없이 인력감축을 요구했다”며 “병원의 중흥기에 얻은 이익과 자산은 재투자가 되지 않고 형제 병원에 건립을 위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백병원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병원을 키우지 않고, 다른 형제 병원을 새로 건립하기로 한 법인의 경영 전략 때문이다”라며 “오히려 교직원들은 피해자로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하고 적절한 예우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 철회 요구하는 교수협의회. 사진=뉴스원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 철회 요구하는 교수협의회. 사진=뉴스원

조병규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고, 지금도 응급 환자를 이송할 병상이 부족해 지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울백병원의 폐원은 중구를 비롯한 서울 도심의 심각한 의료공백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병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논리보다 책임감이라고 폐원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제학원 내에서도 단순히 적자를 이유로 지난 83년동안 서울시민들의 건강을 지킨 백병원을 ‘폐원’하겠다는 이사회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제대 교수 A씨는 “서울백병원은 인제대학교 구성원에게는 자부심과 학교의 상징적인 존재”라며 “서울백병원은 백병원의 모태이자,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봐도 선교사가 설립한 세브란스 병원과 일제가 만든 서울의대와 달리, 백인제 박사와 백낙환 전 이사장이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하고 키운 한국 근대화의 역사이며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서울백병원은 ‘한국 근대 의료 역사의 한 축’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물”이라며 “단순히 적자를 이유로 어떠한 자구 노력 없이 서울백병원을 폐원하는 건 역사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외부에서도 서울백병원 폐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원 출신 B씨는 “대학병원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들도 적자를 감당하면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대학교와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라며 “지난 20년간 적자가 누적됐지만 인제학원 내에 여러 병원들이 있어 폐원이라는 손쉬운 결정 말고도 다양한 회생 방법이 있는데도 쉽게 폐원하겠다는 건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창립83년만에 폐원 위기. 사진=뉴스원
서울백병원 창립83년만에 폐원 위기. 사진=뉴스원

정치평론가인 최양오 박사(경제학)도 “윤석열 정부는 문화에서뿐만 아니라 의료 한류를 꿈꾸며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서울 의료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전통의 서울백병원을 폐원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역행하는 판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백병원이 있는 서울 중구도 인제학원의 ‘폐원’ 의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구청은 서울 중구 백병원이 폐원 수순을 앞두자 도심 의료 공백을 우려해 폐업을 보류해달라고 18일 요청했다.

중구 측은 “서울백병원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폐업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백병원은 중구 유일의 대학병원으로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담당하고 있어 폐원 시 심각한 도심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은 코로나19 당시 최전선에서 감염병 전담기관 역할을 했다. 서울백병원이 폐원하면 중구 내 종합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만 남게 된다.

중구는 앞서 병원 측에 ‘앞으로도 서울백병원이 주요 응급의료기관, 감염병 관리기관으로 남아 중구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함께해주길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이처럼 병원 안팎에서 서울백병원 ‘폐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높지만 인제학원측은 20일 이사회에서 폐원을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제학원측 관계자는 “백낙환 전 이사장이 물러난 이후 새로이 이사회를 장악한 측에서 서울백병원을 폐원하고 서울백병원 부지 활용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백병원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인제학원 이사회는 백병원과 인제학원을 사실상 발전, 중흥시킨 백낙환 전 인제학원 이사장측이 배제되고 설립자 백인제씨 방계인사와 외부인사들이 이사회를 장악한 것로 알려졌다. 

현재 인제학원 이사회는 8명인데 백낙환 전 이사장의 장녀와 동생 등 전 이사들은 석연찮은 이유로 이사회에서 배제됐고, 설립자 백인제 박사의 차남과 방계인 백모씨가 이사회에 새롭게 참여했다. 

인제대 교수 A씨는 “백인제 박사가 백병원을 세웠지만 일찍 납북돼서 오늘날의 인제대와 백병원은 조카인 백낙환 전 이사장이 일군 것”이라며 “백낙환 전 이사장이 타계하고 나서 구성된 새 이사회가 백 전 이사장의 건학과 병원 운영 철학을 계승한 이사들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백병원 교수협은 20일 열리는 법인 이사회의 폐원 결정 저지를 위해 병원 일반노조와 함께 보조를 맞춰 연대한다는 계획이다. 

 

안호현 전문기자 vicahh@info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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