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12년전 쌍용차 옥쇄파업의 잔상, 아물지 않은 상처
[현장에서] 12년전 쌍용차 옥쇄파업의 잔상, 아물지 않은 상처
  • 이동희
  • 승인 2021.04.09 11:55
  • 최종수정 2021.04.09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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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전경.(사진=쌍용차 제공)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전경.(사진=쌍용차 제공)

 

[인포스탁데일리=이동희 기자] 지난 2009년 5월 어느 날.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힌 채 컨테이너가 쌓여 입구를 막고 있다. 공장 담벼락에는 ‘정리해고 분쇄, 구조조정 저지!’, ‘해고는 살인이다. 끝까지 투쟁’, ‘우리 아빠 일자리를 찾아주세요’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함께 30여동의 천막이 세워져 있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온통 새까만 그을음이 하늘을 뒤덮고, 결의에 찬 노동자들의 함성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진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 와중에 어린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평안히 잠들어 있다. 또 엄마 아빠에게 철없이 투정을 부려야 할 어린 아이들도 아빠의 절박한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 따라 나왔다. 모두 쌍용차 옥쇄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의 가족들이다. 뿌연 흙먼지가 바람과 함께 날리고, 강렬히 쬐는 듯한 태양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험난한 투쟁을 암시하는 듯하다.

옥쇄파업을 하는 쌍용차 공장 내부는 더욱 처참하다. 쌍용차 노조 사무실에 쌓인 소주병, 어두운 복도에 깔린 은박지 스티로폼, 단수로 오물이 방치된 화장실, 테이블에 널 부러진 상한 참치 주먹밥이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 취재에 나섰던 기자로써 12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그렇게 77일간의 긴 옥쇄파업이 끝났고, 전체 해고자 1750명 중 절반 가량이 살아 남게 됐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의 삶은 이미 송두리째 망가져 있었다. 당시 쌍용차 대량 해고로 인해 해고자, 희망퇴직자와 그 가족까지 총 30여명이 자살 등으로 숨졌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또 누군가의 남편이다. 하늘 어디선가 부모, 자식,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도 수억대에 달하는 손해배상가압류 등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쌍용차는 12년이 지나 다시 법정관리(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게 유력한 상황이다. 파산 시 쌍용차 임직원과 협력업체 등 실업자만 2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사회적·경제적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이들의 아픔이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쌍용차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다시 벼랑 끝에 내몰려 2009년 처참했던 여름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앞장서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동희 기자 nice1220@info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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