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딜레마… “'SK-소버린 사태' 재연 우려”
상법 개정안 딜레마… “'SK-소버린 사태' 재연 우려”
  • 박효선 기자
  • 승인 2020.07.17 08:28
  • 최종수정 2020.07.17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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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 3대 쟁점 ‘다중대표소송‧집중투표 의무화‧감사위원 분리선출’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경영권 흔들고 일자리 가로막는 상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사진=인포스탁데일리DB

[인포스탁데일리=박효선 기자]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의 21대 국회 통과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재계와 학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뒤흔들었던 사례 등을 들며 상법 개정안은 해외 투기자본들에 국내 기업을 위협할 수 있는 여지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상법 개정안에는 △모기업 주주가 자회사에 대해서도 소송을 걸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을 사내이사와 분리한 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해 선출하도록 하는 제도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 주총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과 한국기업법연구소(이사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16일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경영권 흔들고 일자리 가로막는 상법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선 지난 6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과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들의 주요 이슈들을 점검하고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이 논의됐다.

이혜미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다중대표소송제는 소수 주주의 경영감독권 강화를 통해 대주주의 사익추구를 막는 효과가 있다”며 “감사위원 분리선출도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게 주총 결의요건을 완화시켜주는 만큼, 기업의 원활한 주총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은 출석주주 의결권의 과반수 및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1 이상의 수로 의결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 대해 발행주식 총수 규정을 배제한다.

법무부는 오는 21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최종 정부 입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다중대표소송제로 국내 기업 '모·자회사' 이익 충돌 가능성… 대표성 기준도 모호”

이에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다중대표소송제로 인해 서로 법인격이 다른 모자회사 간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모회사와 자회사의 각각 상장을 허용하고 있는데 다중대표소송제로 인해 모회사 이익과 자회사 이익이 충돌하거나 모회사 이익과 자회사 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양만식 단국대 법과대학장도 “현행 대표소송제가 모자회사 관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신규로 도입할 필요는 있으나 소송 남발에 따른 리스크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권재열 원장은 “소수 주주 권한 강화를 위해 도입한 집중투표제가 오히려 이사의 대표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현행 상법상의 집중투표제는 득표수에 따라 차례로 이사가 선임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1표만으로도 이사로 선임될 여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아직까지 기업 자율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의 최종 목표는 기업의 경영성과를 높이고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인데 집중투표제로 인해 소액주주로 하여금 대주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집중투표제는 사실상 기업 성과를 높이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 투기자본, 3%룰 활용해 ‘늑대떼 전술’ 방식으로 국내기업 위협할 것”

특히 권 원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 사실상 기관투자자에게 감사위원 선임권을 넘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현재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적극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허용된 상황에서 감사위원까지 선임할 기회를 주는 것은 자칫 시장 교란을 초래하는 부작용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상법 개정안 내용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을 따로 선출하되 선출시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및 일반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방안으로 이른바 ‘3%룰’이라 불린다.

권 원장은 ‘늑대떼 전술(wolf pack)’을 비유로 들어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위협가능성을 우려했다. 늑대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것처럼 해외 투기자본이 기관투자가들과 연계해 늑대떼 전술을 펼치며 국내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권 원장이 제시한 ‘늑대떼 전술’ 관련 과거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위협했던 사례를 들었다. 그는 “2003년 소버린이 SK 주식을 25% 가까이 매집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면서 “당시 소버린은 5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4.95%씩 SK 지분을 분할 취득해 25%까지 지분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소버린이 어떤 제재를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부연이다.

양만식 법과대학장은 “감사위원회의 실효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이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관으로 감사를 두고 1인 감사의 독선을 방지할 수 있도록 일정규모 이상의 회사는 3인 이상의 감사로 구성된 감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러한 신규 제도의 도입도 의무화나 강제하는 방식보다 정관에 따른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 법과대학장은 사외이사 임기 단축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개정안에 이사의 임기상한을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다는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이사의 임기를 1년으로 할 경우,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는 위원이나 사외이사의 임기도 1년이거나 그보다 짧을 것인데 상대적으로 회사의 정보를 취득함에 있어 한계가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감사위원의 감사역할이나 사외이사의 이사회에서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게 되는 불합리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길수록 기업 가치가 높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도 효과적이었다”는 조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의 현장 의견을 수렴해 참석한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불합리한 법령을 정리하겠다는 개정 취지는 이해하지만 경영권 침해나 기업규제 강화로 인식돼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 의견을 전달했다.

추 본부장은 “코로나19로 대다수 기업이 미래 투자보다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본시장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하면 단기차익을 노리는 외국 투기자본의 악용 등도 입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선 기자 hs1351@info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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